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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팀/하제

[정신질환] 어느 봄


어느 봄




※ 이 글은 자살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해당 요소에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읽을 때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






그날은 아마 어느 봄이었을 것이다.

대학에는 벚꽃이 피어나고, 학생들은 공부를 하러 가거나, 과제를 하거나-혹은 다 때려치우거나-, 수업이 끝나면 간헐적으로 손에 술병을 들고 동아리방으로 기어들어가 봄기운이 오른 얼굴을 띠는 시절. 나와 내 친구 J는 굳이 분류하자면 마지막의 경우였다. 우리는 동아리방에서 술이나 까며 서로의 지극히 무계획적이고 학점-파괴적인 일상을 내내 함께해온 돈독한 친구였지만, 그러면서도 속 깊은 얘기는 잘 터놓지 않는 친구이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 커밍아웃[각주:1] 을 끝낸 상태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날따라 J의 침묵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있지, 하고 시작하는 말도.

 

_있지, 저번에 말한 내 친구 기억나?

내 친구는 자살했어.

 

말을 꺼내는 J의 손에 들린 술병에서 날아갈 듯 낮게 깔린 술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 친구는 자살했다.

그게 왜였는지는 너무 복잡해서 자세히 말하기 힘들다. 어떤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사람들이 모두 믿어주기는 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가정사가 복잡한 청소년은 흔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청소년도 흔했다.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은 흔했다.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 말하는 치기어린 여고생도 흔하고, 그것을 말하지 못해 앓는 일도 흔했다. 그리하여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조차도 결국 흔했다. 그 모든 것은 대한민국에서 정말로 흔한 일이잖아, 그래서 나는 말하기 힘들다. 지금도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냥, 좀 복잡해, 라고 말할 것이다.

 

그 애는 그런 것들이 나와 일부분 비슷해서 오래도록 친했다. 차이가 있었다면 나는 철저히 모든 것을 숨기는 입장이었고, 그 애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길 바랬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 애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오늘은 좀 어때? 라고 물어보면 지친 내색 하나 않고 매번 다른 말을 건네왔다. 오늘은 재미있었어. 어제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내일은 다른 사람을 만날거야. 서울에는 더 다른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그런 말에 웃고, 고개를 젓고, 무슨 일이든 잘 되길 빌어주는 쪽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애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빌었다. 그 애가 말하는 자신의 성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것[각주:2] 이었으며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애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거짓말처럼 그 애 같은 사람이 나타나 서로 이해하고 잘 살길 바랬다. 여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이런 이유로 여고에 섞이지 못하는 그 애의 모습은 나와 정말 달랐고 나는 그것을 보기 힘들었으니까.

 

 

 

_왜 보기 힘들었는지 지금은 알아. 나는 그냥 외면하고 싶었던거야.

나는 그 느낌을 상상도 해본 적 없으니까. 어떻게 위로해야할지조차 몰랐으니까.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알아도, 여자가 아닌 건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 네 정체성.

지금은 그냥 레즈비언[각주:3] 이라고 해. 그런데 조만간 말하려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거.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거든. 꼭 말하고 싶어.

여자 아닌거, 라고 말하면서 그 애는 웃었다. 긴장되고 떨리지만 거긴 여기랑 좀 다른 사람들이 모인거니까 분명 뭔가 다를거라 믿는다고도 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라고 말하면 내가 그 애의 힘들게 해낸 결심마저 꺾어버릴 것 같았다.

 

그날 밤 그 애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많이 말한다면 뭔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말하기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그래도 완전히 나쁜 반응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나는 그저 그리 생각했다. 그 뒤로 그 애는 전화기 너머에서 말이 없었고 전화는 자연스레 끊어져서, 나는 그 애가 어떤 생각으로 밤을 새고 어떤 감정으로 뒤척였을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애는 여전히 사람을 만났다. 오늘은 좀 힘들었다는 말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도. 사실은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말도. 여자가 아니면, 남자도 아니면, 그럼 넌 뭐야? 라는 말을 들으면서 거부당했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너무하네, 라고 하면 그 애는 잠시 뜸을 들이다 웃으며 -, 너무했지- 말을 흐리곤 했다.

 

 

 

_걔가 받은 질문을 내게 얘기해준게 아직까지 기억나.

넌 부치[각주:4], [각주:5] 이야? 둘 다 아니에요.

그럼 바이[각주:6]? 아뇨.

어쨌든 레즈는 맞는거지? 레즈비언도 아니에요.

너 여자 아냐? 아뇨, 아니에요. 전 여자도 남자도 아니에요.

 

그럼 넌 뭐야?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애는 이런 질문을 계속 듣고 살았던거야. 죽기 직전까지.

 

 

 

같은 질문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고 그 애가 말했다. 만나는 사람은 매번 변하는데 자신은 그대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애임을 늘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다. 모임에 나갈때면 여기 아무것도 아닌 애 온다는 말을 듣고, 자기를 소개할 차례가 오면 여긴 ○○인데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래. 그게 뭐냐면 니가 설명하는게 낫겠다 라는 소개사로 시작하는 만남이 일상이 되었다. 자신의 아무것도 아님을 말했지만 그것을 이해받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 말을 줄였고, 친구는 그 앞에서 다시 말이 없어졌다. 흔한 일이었다. 흔한 일을 늘 마주하듯 그 애는 웃음이 사라졌다. 언젠가는 숨을 내뱉듯 이제는 즐겁지 않아, 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애가 내 이름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다들 자기를 뭐라고 말해, 그런데 그건 내 것이 아니잖아. 나도 내가 뭔지 모르겠어. 이런 말이 늘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 그 애에게 집에서 넷 까페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을 들켰다는 문자가 왔다. 그 다음날은 부은 얼굴로 웃으며 핸드폰을 뺏겼다고 말했다. 점점, 말없는 웃음만 늘어났다.

 

 

 

_힘들어, 라고 문자가 왔어. 자고 일어나서 그걸 봤어.

그리고 얘가 학교에 안 나왔는데 하루 있다가 장례식에 와달라고 가족한테 문자가 왔어.

그 뒤는 기억이 안 나.

 

J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긴 꿈에 젖었던 사람처럼 목소리가 축축했던 것을 나는 애써 모른척했다. 술병을 쥔 손이 점점 내려앉으며 몸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J의 어깨를 감싸안아 위로해도 될지, 저런 죽음 앞에서 감히 내가 그래도 괜찮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운좋게 살아남은 내가 하는 위로는 기만이 아닐까, 내 위로라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숨죽인 울음 사이에서 맴돌았다.한참을 기다리다 가만히 올려 어깨를 도닥인 손을 J는 쳐내지 않았다.

 

_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걔가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걔를 이해할 사람이 있었을까? 너라면,너같은 사람이 그때 걔 옆에 있었더라면 걔는 죽지 않았을까? ? 말해줘

 

나는 이해했을거야. 나도 걔랑 같은 사람이니까, 나라면 그랬을거야. 그러니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울지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나이에 나와 만났더라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 친구에게, 그리고 그 친구를 위로하는 나에게. 부둥켜안고 울다 보니 새벽이어서 나와 J는 둘 다 쓰러져 잤고, 아침에 허름한 모습으로 일어나 집에 갔다. 그리고 J는 두 번 다시 이 이야기를 내게 하지 않았다.

 

 

 

2년 뒤 나는 J를 다시 만났다. 휴학과 복학을 해내고 다시 돌아온 어느 봄이었다.

거리에는 벚꽃이 피어나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장례식장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사진으로 다시 만난 J는 꽤나 낯선 모습이어서 나는 현실감각을 잠시 잃을 뻔 했다. , 증명사진으로 보니까 진짜 안 어울린다. 같이 동아리방에서 술이나 까고 있어야 할텐데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식장 바깥쪽에서 J의 어머니께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제 밤에 걔가 핸드폰으로 인터넷만 하길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터넷이나 한다고 그런게 그게 잘못인가 싶어, 그게 계속 생각나 J의 언니는 그런 J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도닥이고 있었다. 영정사진이 걸린 방과 그 밖의 가족 사이에서 나는 이 자리에 서있었을 J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데 지금 이 장례식이 현실이라는 것이 이상해서 나는 차라리 땅이 무너지길 바랬다. 하지만 땅은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_[나랑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었어

있었는데 이미 놓쳤지 놓쳤다고 봐야겠지]

 

마지막으로 SNS에 남긴 글이 떠올랐다. 이게 마지막 신호였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빈자리만 남은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내가 저때 J의 옆에 있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모르지. 결국 나는 J가 왜 죽었는지, 마지막으로 등을 떠민게 뭐였는지 끝까지 모를거야. J가 그랬던 것처럼.

_천국은 없어, 사람은 그냥 죽으면 썩는거야.


J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천국은 아니더라도 벚꽃잎이 햇빛과 뒤엉켜 한가득 날리는 모습이 예뻐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천국이 있었으면 했다. 그곳도 여기처럼, 여기보다 더 벚꽃이 예뻤으면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J J의 친구가 만났으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나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이 괜찮게 살았으면, 그래서 외면당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했다.

 

그래서 어느 봄날 나는 기도했다.

이런 이유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게 해주세요.

그것이 헛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_ 하제



  1. 커밍아웃 - 성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 및 지향성을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로 밝히는 것. [본문으로]
  2. 논바이너리 - 남성도 여성도 아니거나, 두 젠더가 부분적으로 존재하거나 혼합되어있는 등, 섹스/젠더 이분법 밖에 존재하거나 그 바깥에서 정체화하는 것 (출처 : 애슐리 마델 - LGBT+첫걸음. 팀 이르다 옮김, 봄알람 출판사) [본문으로]
  3. 레즈비언 - 다른 여성(women)에게 끌리는 여성. 본인이 여성(womanhood)과 관련된다고 느끼며, 여성에게 끌리는 논바이너리나 젠더퀴어인 경우도 있다. (출처 : 애슐리 마델 - LGBT+첫걸음. 팀 이르다 옮김, 봄알람 출판사) [본문으로]
  4. 부치 - 여성적인 것 보다는 남성적 젠더 신호, 스타일, 정체성에 더 편안한 여성들을 위한 레즈비언 용어 (출처 : 게일 루빈 - 일탈. 신혜수 등 옮김, 현실문화 출판사) [본문으로]
  5. 팸 - 남성적인 것 보다는 여성적 젠더 신호, 스타일, 정체성에 더 편안한 여성들을 위한 레즈비언 용어 (출처 : 게일 루빈 - 일탈. 신혜수 등 옮김, 현실문화 출판사) [본문으로]
  6. 바이 - 바이섹슈얼/바이로맨틱. 둘 혹은 그 이상의 젠더에게 끌리는 것. (출처 : 애슐리 마델 - LGBT+첫걸음. 팀 이르다 옮김, 봄알람 출판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