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패싱 게임

[Editor's quotes] 패싱(passing), 나의 외적인 모습이 사회적으로 소속되기를 원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혹은 보여지기를 원하는 성별의 일원으로 남들에게 인식되었을 때, ◇◇으로 보여지기를 통과(pass-)했다, 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첫 눈에 남성으로 인식된 트랜스남성은 패싱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회적인 관계 맺음 안에서, 트랜스젠더에게 패싱은 때로는 생존에 직결된 문제이고,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며, 때로는 나의 정체성을 증명받거나 증명하기 위한 수단도 됩니다. 트랜스젠더, 그리고 패싱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함께 경청했으면 좋겠습니다. _리나

패싱 게임

쟁뉴 (블로그팀)

한 팟캐스트 녹음에 참여할 때의 일이다.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데, 스튜디오 스태프분이 오셔서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끝에 분, 목소리 내주세요”

“아 아”

“끝에 분, 목소리 내주세요”

“아 아”

“끝에 분요”

“아 아”

“끝에 분은 목소리 안내주시나요”

“내고있는데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일까?

나는 겉모습이 여성으로 인지되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테스토스테론에 장기간, 강하게 노출된 경험 덕에 낮고 굵어 ‘남자 목소리’로 들렸다. 스태프분은 끝에 앉아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몇 번이고 다시 목소리를 내달라고 했던 것이다.

“패싱은 가장의 일종으로, 재미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패싱은 남자 아니면 여자가 되라는 문화적 명령에 대응하여 떠맡겨진다. 패싱을 자신이 선택한 성별로 보이려는 행위라고 정의하면 좀 덜 우울할 것이다. 모든 이는 패싱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남보다좀 쉽게 해낼 뿐이다.

패싱에는 상벌의 기제가 작동한다. 트랜스섹슈얼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매우 광범위한 대중에게 커밍아웃한 사람인데도, 난 여전히길을 걸을 때면 패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얻어맞기 싫기 때문이다. 패싱하면 사람들이 당신이 무슨 괴물인 양 쳐다보지 않는다. 모든 실패한 패싱은 깊은 수치심을 남긴다.“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에서.

나는 패싱을 쉽게 해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다. 남자와 여자만 있다는 신화가 만연한 세계에서 에이젠더로 정체화 한 사람은 항상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 에이젠더로 패싱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한편 내가 바라는 내 신체는 사회적으로 ‘여성형’이라고 불리는것에 가까운것은 사실이다. ‘남녀사이엔 친구가 없는 세상’에 살고있지만 나의 친구는 대개가 여성이거나 트랜스젠더퀴어고, 쇼핑을 할때 여성복 코너부터 둘러본다. 남이 나를 남자랑 여자중 하나로만 볼 것이라면 여성으로 인지되는 편이 낫다. 그 편이 디스포리아가 덜하다. 나는 에이젠더이고, 내 젠더에 여성성은 없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여성으로 패싱되기를 목표하고 있다. 나는 남성으로 지정받았고, 여성, 혹은 비남성으로 패싱되고 싶은 에이젠더이다.

나는 가슴이 나와있고, 머리가 길고, 눈썹은 항상 다듬고 다니고, 수염도 없고 피부도 부드럽다. 여성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하고 다니는 대로 했더니 여성으로 인지되어버릴 뿐이다. 내가 어떤 트랜지션도 하지 않은 상태일 때부터 지켜온 직장 사람들은 내 뒷모습을 보고 여자인줄 알았다 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하지만 나는 법적으로 남성이라 적혀있고, 내 목소리는 너무도 낮고 굵어서 목소리를 바꾸는 연습을 해도해도 맘에 드는 소리가 나지 않아 그냥 편할 대로 목소리를 내고있다.

성별을 감별해 내는 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볼 때에, 입을 다물고 있는 나는 여성으로 보일 때가 많은지, 비남성으로서의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반면 나의 법적인 성별을 아는사람, 혹은 나와 대화를 해 본 사람은 저 사람은 ‘비 남성성’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기 전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아무 생각이 없다가, 아 남자구나! 라고 인지해버린다. 그 많은 단서에도 불구하고, 고작 목소리라는 단서 하나가 모든 것을 뒤집을 정도로 큰 것인가? 셈이 너무 이상하지 않나? 나 외에 다른 사람들에 경우에도, 모든 요소가 남성을 가리키고 있으나 가슴 때문에 여성으로 인지받는 사례나, 모든 요소가 여성을 가리키지만 흐릿한 수염자국 때문에 남성으로 인지받는 사례, 모든 요소가 특정 성별을 가리키지만 호칭 하나로 인해 다른 성별로 인지되는 사례 등, 셈이 맞지 않는 패싱은 너무도 흔하다. 젠더 감별이라는 행위는 단 하나의 단서에 지나친 과중치를 주고선 나머지는 무시해버리는 활동이라 정의하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는 많은 사람의 삶을 유지시켜주기도 한다. 가족이나 직장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나는 그냥 점점 피부가 좋아지고 살이 오르는 사람으로 인지될 뿐이다. 이사람의 법적 성별과 실제 성별이 다를거라는 상상력의 부재로, 나는 최소한 직접적 지인에게서는 대놓고 혐오당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이 화장실에 적합한 성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 척 목소리를 내서 화장실 이용권을 얻어내는 것도 이런 말도안되는 패싱 절차 덕분이다. 고맙다 거 참. 

패싱은 이렇게나 불합리한 절차를 가졌고, 절차만 불합리한게 아니라 결과, 즉 상벌 역시 불합리하다. <젠더 무법자>에 나와있는 바와는 달리 패싱 게임은 승자가 상을 받고 패자는 벌을 받는 ‘합리적’인 게임이 아니다. 바로 위에 나와 있듯, 나는 패싱에 실패해서 혐오를 피했다. 나는 패자이기에 이따금 밤길에서 안전할 수 있고,  패자이기에 가족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패싱에 실패할까 두려워 안전하게 성별 경계가 미묘한 옷을 입고다니는 탓인지, 화장을 해도 굉장히 쌩얼메이크업처럼 하고 다니는 탓인지 나의 기분, 나의 속앓이, 성별이 나눠진 공간(옷가게, 화장실) 등에 대한 공포심 외엔 패배로 인해 받은 벌은 또 없다. 물론 이런 심적 고통은 인생 최악의 고통중 하나이지만.

패싱 게임의 승자로서 받은 상은 또 없다. 나는 에이젠더다. 비남성으로 패싱된다고 해서 갑자기 패싱성공! 우와! 하기도 미묘한 위치라서 심적 보상이 패싱을 실패할 때의 고통을 전혀 보상해주지 못한다. 나의 비남성 패싱 경험중 가장 자주 겪는 것들은 화장실과 관련된 경험, 그리고 길거리와 관련된 경험이다.

트랜스젠더와 화장실은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는 남자화장실을 주로 가는데, 남자화장실의 여자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여자화장실의 남자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남자화장실에 들어갈때, 나를 보는 시선은 흔하게 느낄 수 있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는 “어 어 어???뭐지??”라고 대놓고 외치는 사람을 본 경험도 있다. 다행히 성기환원의 환상에 사로잡혀 내가 서서 오줌을 싸는것을 보고선 "아~!" 라며 안심한다…(패싱..불합리…) 덕분에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는것은 기분나쁜 경험이며, 사람없는 화장실을 골라서 후다닥 볼일을 보고 나오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길거리는 여성과 사이가 좋지 않다. 한국이 밤길이 안전한 나라 라는 말은 남성에게만 해당된다. 그것을 트랜지션을 시작한 이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현재 유학 와 있는 독일에서, 길을 걷다가 “어이 예쁜이~!” 소리를 듣거나, 웬 중년 남성이 대뜸 인사하기에 맞인사를 했더니 손에 키스를 담아 보내주거나… 길 가다가 빤히 쳐다보는것은 물론이고 “맥주 줄까?”라며 작업을 걸기에 씹고 지나갔더니 “외국인!!!”이라며 괴성을 지른적도 있다. 당황하고,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다가 수습할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에야 느끼는 패배감. 승자에게 주어진 상품은 안전하지 않은 거리였다. 내가 겪은 것이 인종차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안 남성으로 인지 되었을 경우와, 백인 여성으로 인지 되었을 경우 보단 아시안 여성으로 인지 되었을 때에 이런 경험을 더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인종과 젠더의 불가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 패싱이라는 게임의 진행과정, 결과물의 불합리에 대한 경험을 나누어 보았다. 논바이너리의 패싱, 트랜스젠더의 패싱, 여성혐오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이 불합리와 혐오의 해결 실마리는 무엇일까? 가장 와닿는 근원은 젠더와 신체에 대한 무의미한, 바이너리 위주의 결합이다. 염색체, 목소리, 가슴, 성기, 털, 의복에 젠더를 매기지 말자. 내 몸은 남성의 신체 일부와 여성의 신체 일부를 섞은것이 아니라, 그저 에이젠더의 신체, 에이젠더의 염색체, 에이젠더의 가슴 성기 털을 지니고 있고, 에이젠더의 의복을 입을 뿐이다. XY로 남성을 지칭하지 말자. 남성기/여성기라는 어휘를 제거하자. 모든사람의 성기가 ‘전형적’일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자. 머리가 짧다고, 털이 났다고 남성이라 생각하지 말자. 어떤 옷을 입었든 그사람에게 과도한 눈길을 주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자. 이 중 수많은 명제들은 페미니즘에서 수도 없이 주창된 것들이고,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말들이다. 혐오의 뿌리들이 모조리 제거되기 전까진, 패싱 게임은 계속될 것이고, 그에 의해 예측할 수도 없는 불합리한 방식으로, 승자도 패자도 고통받는 세상이 계속 될 것이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 처럼 우리 혐오의 뿌리도 연결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