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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팀

젠더퀘스처닝 팬로맨틱 그레이에이섹슈얼 감남이님 생애기록

[각주:1]젠더퀘스처닝 [각주:2]팬로맨틱 [각주:3]그레이에이섹슈얼 감남이님 생애기록

인터뷰, 작성자, 각주: 덴타타

*인터뷰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발랄하고 명랑하게 말했기에, 작성자 또한 심각한 얘기라 할지라도 가벼운 톤을 유지하며 썼다. 이 점 양해 바란다.

유년기

감남이는 부모님이 맞벌이였던 탓에 초등학교 진학 전 어린 시절을 외가댁에서 보냈다. 외할아버지와 등산을 가고 가끔 오는 사촌오빠와 노는 등, 바깥 생활을 아주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외동으로서의 외로움은 좀처럼 메꿔지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애니메이션과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라이온 킹>의 대사를 다 외운다는 감남이는 자신을 오타쿠라 지칭한다. 90년대 투니버스의 다양한 재패니메이션에 나오는 사나이라는 개념은 감남이를 매료시켜 자신의 워너비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사나이는 울지 않아. ‘사나이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배신하지 않아. ‘사나이는 정의로워. ‘사나이는 약한 자를 돕고 나쁜 자를 벌해. 감남이는 사나이가 되고 싶어 5세 무렵부터 절대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사를 맞을 때, 이를 뽑을 때, 계단에서 굴러 양 무릎에서 피가 흘렀을 때에도 그는 눈물을 꾹 참았다. ‘사나이가 남성을 뜻하는 단어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멋진 인간상이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친어머니 이상의 존재였던 외할머니가 8세에 죽고 감남이는 큰 비탄에 빠진 채 서울의 친부모와 함께 살게 된다. 친어머니가 정성 가득히 사랑을 주며 보살펴 주었기에 감남이는 새 가정에 적응하고 다시 어느 정도 밝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네가 매일 나 좋아한다고 했는데, 드디어 나도 너한테 두근거림을 느꼈어.”

그래, 내가 널 지금까지 매일 사랑한다고 했잖아.”

감남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각주:4]백합물을 보곤 색다른 사랑의 형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에겐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함께 다니던 절친이 있었는데, 그 절친은 늘 자신과 감남이를 레즈비언이라고 설명하고 다녔다. 털털했던 감남이는 특별한 마음이 없었음에도 사람 좋게 웃으며 그 말을 수긍했는데, 백합물을 접하고 난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정말로 두근거림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일전에, 감남이는 반에서 느끼한 애라고 불리던 남자애에게 끌려 1년 간 썸을 타고 교제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리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저 성별에 관계없이 끌린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을 뿐이다.

소년기

감남이는 강북 지역에서 강남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학교도 전학가게 된다. 그 시절 감남이는 잠시 같은 반 여학생에게 빠져 지냈다. 감남이는 그 친구를 저 혼자 강바닥이라고 불렀다. 아주 맑은 물을 보았을 때 강바닥이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친구의 눈도 더할 나위 없이 맑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성격 덕에 학급에서 인기인이었던 감남이는 항상 그룹 없이 혼자 밥 먹는 강바닥을 두고 볼 수가 없어 자신의 그룹에 끼워주려고 했다.

밥 같이 먹을래?”

괜찮아.”

그러나 강바닥은 따돌려지는 게 아닌, 혼자 있기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감남이는 그의 그런 면모에서 왠지 모를 우아함을 느꼈다. 고고하고 아름다운 사람. 감남이는 강바닥을 동경했지만-사실은 좋아했던 것 같다고 증언한다-그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둘은 가을 쯤 되어 단풍이 흐드러진 날에 무릎베개를 해줄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됐지만, 감남이는 끝까지 선을 넘지 않은 채 중학교 1학년을 마쳤다.

새로운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즐겁고, 감남이 또한 특유의 활기찬 성격으로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는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며 감남이는 고향의 친구들이 그리워 기존 강북 지역의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새로운 중학교에서의 생활은 일진들과의 전쟁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반에서 자폐증을 가진 친구를 돕고 있었던 감남이는, 그 친구를 밀치고 가거나 자신의 단짝 친구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등, 불량한 행동을 일삼은 일진 남학생들에게 육두문자를 내뱉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것이 분쟁의 시작이었고, 이후 감남이는 1년 내내 일진 남학생들과 서로를 헐뜯고 싸웠다. 그는 자신이 동경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처럼 강하고 정의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한다 해도 몸은 반응하는 법. 일진, 그것도 남학생들과 싸우다 보니 감남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성 위장병을 얻어 10년간 앓게 된다. 11로 싸우면 이길 수 있어, 나는 강하다, 그렇게 자신을 북돋았지만 동시에 상대가 일진 패거리와 집단으로 덤비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있었던 것이다. ‘넌 여자가 아니야.’ ‘넌 못생겼어.’ 일진들에게 다수의 외모 비하를 들으며 감남이는 알게 모르게 트라우마까지 갖게 됐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으면 내가 못생겨서 웃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트라우마는 아직까지 미약하게나마 지속되고 있다. 

너처럼 말투도 거칠고 귀여운 것도 안 하는 이런 사람들은 여자가 아니다. 넌 남자다.”

[각주:5]지정성별을 부정당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하나뿐인 자식이 엘리트로 자라주길 바란 감남이의 부모는, 중학교 시절 당시 소통을 거부한 채 무리한 교육을 강요했고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물리적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집에서는 보호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매일 적과 싸우느라 지친 감남이에게 도피처가 되어준 곳이 바로 애니메이션/게임 오타쿠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였다. 감남이는 그곳이 그나마 쉴 수 있는 둥지 같은 곳이라 느꼈고, 소속감과 애착을 느꼈다. 위의 몇몇 이유들로 상당히 우울했던 감남이는 게임으로 힘든 시기를 견뎠고, 그것을 인생의 새로운 지표로 삼게 된다.

당시에 감남이는 모 게임에서 감기가 들어가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게임을 하며 감남이는 자주 함께 플레이하던 다른 남성 유저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꼈고, 바로 그 상대에 의해 감남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감남이가 애틋하게 생각했던 상대는 이모티콘도 안 쓰고 말투도 거친 감기에게 네가 여자일 리 없다. 넌 남자다.’라며 닉네임에 남() 자를 붙여 놀렸더랬다. 누군가에겐 모욕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감남이는 그 단어의 발음이 썩 맘에 들었고, 결국 지금까지 그의 닉네임으로 기능하고 있다. (‘감남이는 가명이며 비슷한 구조의 예시 입니다.) 이후에도 게임이나 다른 인터넷 매체의 여러 남성 유저들이 그를 두고 여자답지 못하다며 깎아내렸다. 감남이는 그들이 원하는 여자개념에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해야하는 것이 귀찮고 짜증나서 그래 그럼 그냥 남자할게하고 도리어 나이 많은 남성들을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한 감남이는 이 무렵 환경보호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개인적으로 환경보호단체를 만들어 반 친구들을 물질적 보상으로 끌어들여 가입시킨 후 환경보호를 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내고 뿌듯해하곤 했다. 중학생이 되고 난 후부터는 환경보호에 보탬이 되는 행동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프레온가스 배출을 줄이고자 10년간 에어컨을 틀지 않았고, 공장식 축산으로 희생되는 동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6년간 채식을 했다. 이러한 행동을 특히, 채식- 남들 앞에서 보일 때마다 그들은 감남이가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있다며 비난하거나 마치 그것이 자신을 모욕한 것이라는 양 무척이나 불편해 했다. ‘너 하나 그런다고 바뀌는 것 하나도 없다는 핀잔도 듣기 싫은 말 중 하나였다. 잦은 트러블과 설명의 귀찮음으로 인해 감남이는 결국 숨어서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을 해야 했다.

생각해보면 학년마다 동경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여고로 진학한 감남이는 본격적으로 여성과의 로맨스를 원하게 된다. 중학교 때 남자만 많이 만난 탓에 여자가 그리워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감남이에게도 썸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생겼다. 아담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그 아이는 자주 설렐 만한 행동을 했고, 감남이도 점점 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러브스토리에는 훼방꾼이 있는 법. 혜성처럼 나타난 부치친구는 둘에게 고난을 선사해주었다.

부치친구는 흔히 말하는 부치스타일이라는 것에 부합하는 스타일과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감남이가 이후에 붙인 별명이다. 언젠가부터 썸녀 주변을 맴도는 부치친구를 보며 감남이는 그가 자신의 그룹(썸녀도 속해있던)에 들어오고 싶어 그런다고 착각했다. 부치친구가 썸녀에게 살갑게 굴 때마다 감남이 또한 그를 친구라 여기며 친근하게 대했지만 그는 썸녀 외의 인간에겐 유독 쌀쌀맞았다. , 얘는 우리 그룹에 들어오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썸녀를 눈독 들이고 있는 거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감남이는 썸녀를 믿었기에 괜히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썸녀는 감남이의 예상을 빗나가 부치친구하고만 놀기 시작했다. 질투가 났지만 또 어떤 약속이 돼있는 관계도 아니었기에 감남이는 밀당하는 느낌으로 장난스럽게 썸녀를 책망했다.

, 어떻게 나를 두고 그 애하고만 놀 수 있어?”

단순한 삐친 척이었다. 감남이는 썸녀가 자신을 달래주면 못 이기는 척 풀어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썸녀는 감남이가 진짜 삐친 줄 알고 이해를 못하겠다며 화부터 냈다.

대체 왜 그런 걸로 화를 내는 거야?”

옥신각신하다 결국 일은 꼬여버렸고 두 사람의 사이도 갈라졌다. 그 후 부치친구와 매일 붙어 다니는 썸녀를 보며 감남이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3 때 교제했던 사람은 감남이와 같은 취미를 가진 오타쿠이자 오랜 절친이였다. 평범하게 자고 일어난 어느 날, 감남이는 문득 자신이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 내가 너무 좋아진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그럼 고백해. 만약에 나였으면 너 받아줬어.”

친구는 감남이가 여자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덕분에 그는 은근슬쩍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친구의 긍정적인 답변을 듣곤 확신에 찬 감남이는 바로 고백했지만 차이고 말았다.

우린 일단 고3이라서 안 되고, 여자랑 정말로 사귀면 부모님한테 불효하는 것 같아.”

불효라니. 하도 구시대적 발상이라 일말의 상처조차 받지 않은 감남이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 마음이 착했던 친구는 매달리는 감남이를 밀어내지 못했다. 현재의 그는 그때 친구를 붙잡았던 걸 찌질하고 나쁜 짓이었다고 일컫는다.

그렇다고 친구의 마음에 감남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감남이는 학교에 두고 갔던 단어장의 몇몇 페이지에 애정 어린 말들이 적힌 것을 보게 된다. 오늘도 열심히 해. 너무 좋아해. 힘내. 여기까지 다 외웠으면 뽀뽀해줄게. 사랑을 확인 받아서 기뻤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친구는 입시 스트레스를 감남이에게 풀었다.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너무나 쉽게 했고, 그런 언행에 지쳐갈 즈음 둘은 대학의 사정으로 멀어졌다. 대학에 진학한 감남이는 호탕하고 괄괄한 어떤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 감남이는 인생 최악의 연애와 마주하게 된다.

현재, 청년기를 지나며

  감남이는 그 남학생의 호탕하고 자신만만한 점이 맘에 들었다. 당시엔 내성적인 남성보단 외향적인 남성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귀고 난 뒤, 감남이는 그가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로움과는 완전히 상반된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려 감남이가 중학교 시절 내내 그렇게 싫어하고 싸워 온 일진들과 비슷했다. 쓰레기는 아무 데나 버리고, 껌은 꼭 바닥에 뱉었다.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중국인들이 싫다는 등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수시로 했다. 결정적으로 그가 중학교 일진과 똑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같은 그룹 내의 약한 남자애에게 나는 잘 나간다’, ‘넌 찐따다라고 말하는 등 무시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광폭한 행동들에 정이 떨어진 감남이는 이별을 선언한다. 그러자 그는 단체 카톡방에 저 년은 걸레 년이다등의 성적 모욕성 발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와 사귀었던 여섯 달 간 감남이는 사귀는 관계라면 해야지’, ‘사랑한다면 해야지등의 말로 성관계를 강요당했다.

고등학교 시절 연상의 성인과 교제할 때 감남이는 키스를 당했었다. , 연애를 하면 스킨십을 해야 하는가 보다, 그런 생각에 고3 때 여자친구와도 스킨십을 시도했지만 상대의 거부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 섹스가 감남이의 첫 경험이었다.

그냥 했어요. 저의 인생 경험을 위해서.”

그래서 어떠셨어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것 만큼은 후회해요. 첫 경험이고 뭐고 다 떠나서 그냥 그 인간과 알게 된 것 자체를 후회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대화는 끊겼다.

  어려서부터 동물 그리는 걸 좋아해 미술전공자였던 감남이는, 디자인 입시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사실 그 학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주로 다루는 학과였다. 감남이로서는 도무지 할 게 없었다. 감남이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거의 도태되다시피 했다. 특히 조별과제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게 너무나 면목 없고 힘들었다. 감남이는 이때의 자신을 폐기물 쓰레기라고 표현한다. 미래를 재설계하고, 바닥난 자존감을 복구시키기 위해 그는 휴학이란 길을 택했다.

거의 모든 오타쿠가 그렇듯 그는 쉬는 동안 덕질에 충실했다. 그때까지도 그림을 놓지 못했던 감남이는 매일 매일을 백합물 팬아트를 그리는 데에 소진했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감남이는 5개월 동안 피씨방에서 알바를 했다. 누군가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남이는 주 5일 근무제였기에 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알바하기 이전의 그는 남자화장실이 그렇게 더러운 곳인지 몰랐다. 1시간마다 물걸레질을 해도 얼마 안 가 금세 오줌 지린내가 났다. 일어서서 소변을 보는 탓에 소변기 밖으로 오줌방울이 튀기 때문이었다. 감남이는 충격보다도 억울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무슨 일어서서 오줌 싸는 게 대단한 것인마냥, 멋있지? 너넨 못하지? 그런 거 있었잖아요. 어렸을 때. 여자는 못한다. 남자는 일어서서 싼다. 그랬는데, 일어서서 싸니까 이렇게 더러워지잖아요. 지금까지 저렇게 잘난 척 해온 그게, 오히려 더 더러워지고 냄새나는 길인데 왜 그걸 가지고 대단한 것처럼. 그때, 부당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이 구조에 억울함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계속 느꼈지만, 매일 매일 느꼈지만, ‘뭐 그런 사소한 걸로 유난이냐.’ 라는 말에 그냥 넘기고 참아왔던 수많은 것들이 사실 정말 부당했다는 걸.”

문제는 화장실만이 아니었다. 피씨방 남자들 중엔 짜증나는 사람도 많았다. 어느 날 감남이는 평소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 주거나 실수를 수습해주는 피씨방 매니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귀여운 동물모양 핸드크림을 선물로 줬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꽤 예쁘고 향도 좋아서 감남이가 남들에게 선물할 때 자주 구매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게 감남이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어서 준 특별한 선물이라고 착각한 피씨방 매니저는 업무 외 시간에 술에 취한 채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와 모텔은 몇 번 정도 가나?’ 등의 음담패설을 했다. 자신의 정산 실수 건이나 업무 관련 전화인 줄 알고 밤 11시임에도 허겁지겁 받았던 감남이로서는 매우 화가 났으나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할 사이였기에 크게 뭐라 하지 않고 그냥 끊었다.

감남이가 히드라라고 이름 붙인 남자도 있었다. ‘히드라 리스크라는 게임 캐릭터가 침을 뱉는 공격으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말쑥하고 인사성도 바르던 그 남자는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그렇게 가래침을 뱉었다. 종이컵에 침을 뱉는 것까진 뭐라 할 수 없다 해도 자신의 가래침이 엉겨있는 종이컵을 그냥 두고 간다는 게 감남이를 분노케 했다. 바른생활 어른이었던 감남이는 그 종이컵을 또 그냥 버렸다가 쓰레기 가져가시는 분들께서 불쾌한 냄새를 맡거나 흐른 침을 손으로 만지게 될까 봐 헹궈서 변기에 내린 다음 분리수거했다.

그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데이트신청을 받아주지 않자 요금을 정산하지 않고 도망간 청년부터 일베하는 사람, 소라넷하는 사람, 끔찍한 욕을 하는 남학생, 거스름 돈 받는 척 하면서 손잡고 가는 사람 등, 피씨방엔 못 믿을 남성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감남이는 여러 일을 겪어왔음에도 개개인의 문제일 뿐 집단에 대한 일반화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으나 이와 같은 피씨방 에서의 알바 경험은 비성소수자 남성에 대한 선호도를 떨어지게 했다.

휴학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에만 집중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본래 고민거리였던 전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감남이는 어려서부터 몸 이곳저곳이 아팠다. 학창시절 반 친구들은 감남이를 유쾌하지만 항상 아파하는 애라는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기도 했다. 특히 비 오는 날이나 오전 중에 자주 아팠다. 그럴 땐 항상 배를 감싸고 고통을 버티며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조퇴도 자주 했다. 그래도 감남이는 태양이 높게 떴을 때는 안 아프니 태양의 신이 자신을 보살펴준다고 생각하며 경건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등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3 수험생활 도중 난소에 12cm의 큰 기형종이 발견됐을 땐 급하게 절제 수술을 한 탓에 2개월 정도 공부를 중단하고 침상에서 회복해야 했다. 이 기형종을 포함한 몇몇 질환은 지난 6년간의 미술 입시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그림 그리는 자세로 인해 목 디스크가 탈출하여 신경을 압박해 감각을 무디게 했고, 입시경쟁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자궁 질환은 연쇄적으로 여타 질환과 호르몬 불균형을 불러왔다

미술을 사랑했던 감남이지만, 또 그 미술 때문에 육신이 고통스러웠다. 또한 그림을 그리며 얻는 즐거움보다 남의 그림과 비교되며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림에 미련을 갖는 이유는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아까워서였다는 것을 깨달은 감남이는 붓을 놓기로 한다.

복학한 감남이는 일어일문학과로 전과했다. 일본어 역시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었기에 괘념치 않았다. 재패니메이션 오타쿠로서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건 감격스런 일이었다. 전과 이후 감남이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팀원들에게 짐짝이 돼 괴롭기만 했던 조별과제에서 자신의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래된 오타쿠 생활로 썩 괜찮은 일본어 실력을 갖고 있던 감남이는 조별과제에 필요한 자료를 전부 혼자서 만들 수 있었다. 감남이의 손만 거쳐도 서너 명이 모여 만든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왔기에 모두가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남이는 전과 이후 졸업할 때까지 학우들의 존경과 교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즈음 감남이의 학교에 성소수자 모임이 생겼다. 몇몇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은 있었지만 선후배 간의 강압적인 위계질서 등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마주할 때마다 바로 나와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은 해본 적이 없었다. 성소수자 모임 홍보 현수막을 보고 반가워 별 고민 없이 가입한 것도 있었지만, 나름의 계기는 있었다. 휴학 중 백합물 팬아트를 그리며 그와 같은 연애를 꿈꿔온 감남이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더욱 많이 만나보고 싶었다. 마침 열애중인 상대도 있었다. 그 상대에 대한 마음을 다수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학내 성소수자 모임에서 비단 연애 관련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는 다양한 성소수자 관련 단체와 그 단체들의 활동을 알게 되었다. 감남이에게 있어선 위 모임 활동이 첫 성소수자 커뮤니티 활동이었기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정보들이 많았다. 세상에는 감남이가 몰랐던 부당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같은 퀴어 동지들이 상처받고 모욕당하는 모습을 목도한 그는 이전보다 훨씬 시위, 서명 등의 여러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성소수자 모임에서 알게 된 다른 몇몇 성소수자 단체에 정기 기부도 하게 되었고, 현재는 성소수자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전공을 살려 번역 업무를 하고 있다.

, 감남이는 성소수자 모임 내의 세미나에서 공부하며 젠더와 끌림에 대해 배웠고, 그로 인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는 그 전까진 자신을 대충 레즈비언이나 바이라 설명했지만, 젠더란 무엇일까, 성적끌림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가며 [각주:6]재정체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성적끌림을 잘 느끼지 않는다고 판명한 그는, 현재 자신을 그레이에이섹슈얼(Gray-Asexual)이라 소개한다. 젠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잘 모르고, 그래서 젠더퀘스처닝이란 개념으로 감남이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어떤 잣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인터뷰 당일) 세미나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세미나에서 어떤 분이 사실 모두가 지금 여장을 흉내 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했어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저도 사회에서 요구되는 어떤 모습에 걸맞은 분장을 하고 있는 거고, 사회적으로 그렇게 세뇌 당했고, 이렇게 해야 남들이 비웃지 않는다고 하니까 화장을 했고. 물론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100% 자기만족 때문에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하기 싫은데 이렇게 안 하면 남들이 우습게 본다고 해서 하는 게 커요. 요즘은 좀 재미있긴 해요. 새로운 자신을 알아가고 있어요. 그것도 그렇고요, 남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여성성이라는 허상을 수행했어요. 안 하면 이상하게 보니까. 예를 들어 화장하는 것도 그렇고, 옷 입는 것도 그렇고. 아무튼 제가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평범한 걸 입으려고 해요.”

하지만 그는 여성, 남성이란 개념이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젠더에 대해 더 탐구할 필요가 있기에 젠더퀘스처닝이라고 생각할 뿐 [각주:7]디스포리아는 없다고 답했다.

감남이의 성적지향은 팬로맨틱인데, 이 또한 세미나에서 범성애 개념을 접하면서 재정체화한 결과이다. 그 전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백합물을 보고 두근거림을 느껴, ‘이게 바이, 레즈, 그런 건가?’하고 생각했을 뿐 본인을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지는 못했는데 지식을 접하다 보니 팬로맨틱이란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감남이는 이런 정체성을 누군가에게 밝힌 적이 있을까. 먼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는지 그 여부를 조심스레 물었다. 감남이는 아주 의연한 태도로 모친에겐 했다고 답했다. 고등학생일 당시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모친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어, 그래?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혐오발언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네가 좋다면 네 맘대로 해야지, 근데 기왕이면 결혼은 남자랑 하는 게 좋지 않겠니?”

그러나 감남이는 그런 발언을 듣고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구시대 사람이니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충격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3년째 사귀고 있는 애인을 집에 자주 데려가는데 모친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그를 며느리라 부른다면서, 교제 사실을 대충 알고 있다고도 말했다.

부친은 감남이와 애인을 비혼주의자이며 단짝 친구인 사이로 알고 있다. 자신들이 죽고 난 뒤에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비혼주의자 외동딸을 걱정하던 차에 마침 타이밍 좋게 잘 나타난 비혼주의자 친구라고 생각하며, 노년에 둘이 서로를 돕고 의지하라는 등 구체적인 조언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부친이 열린 사람인 것은 절대 아니다. tv에서 동성애자 관련된 토픽이나 모 동성애자 연예인을 보면 혐오발언을 내뱉으며 채널을 돌리기 일쑤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보수적이고 말이 전혀 안 통할 정도로 답답해지는 부친을 보며 감남이는 평생 부친에게는 커밍아웃을 안 할 것을 다짐했다.

감남이는 부모 이외에도 꽤 많은 수의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120명 정도는 감남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거의 다 괜찮은 반응을 보였지만 한 친구는 특이했다.

감남이는 외로움을 타는 시즌이 되면 연락을 안 하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불러내는 습관이 있다. 당시도 그런 시기였다. 초등학교 동창을 불러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단 얘기를 하던 감남이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여자란 사실까지 내비쳤다.

..., 지금 나한테 커밍아웃한 거니? 나한테!”

감남이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을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친구는 자신이 감남이에게 선택 받은 소중한 친구 중 하나고, 그렇기에 나에게 엄청난 비밀을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본인도 요즘 몇몇 여자연예인이 예뻐서 맘에 든다며 감남이의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맞장구를 쳐주려 굉장히 애썼다. 감남이는 친구의 그런 반응이 귀여우면서도 그를 너무 놀라게 한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감남이의 오타쿠 친구들은 동성애라는 주제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리 유별난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감남이는 기억에 남는 커밍아웃 반응은 그게 다일 뿐, 특별히 심각한 혐오발언을 들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젠더 정체성 관련해선 sns상에 게재했을 뿐, 면 대 면으로 커밍아웃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그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해 레즈비언 외의 성소수자에 대해 폭언을 퍼부은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 중 감남이와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이 게이들의 여성혐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게이 커뮤니티 내에 여성혐오가 편재하는 건 사실이니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점점 그걸 게이 전체의 이야기로 가져가더니 게이는 게이라서 모두 나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조용히 있었으나 다른 한 명이 맞아, 게이들 중에 그런 애들 많더라.’라고 맞장구를 치자 혐오발언의 수위가 점점 올라갔고, 감남이의 표정도 급속도로 일그러졌다.

나는 레즈는 너무 올바르다고 생각해.”

그러나 친구가 그의 기분을 알아채고 건넨 말은 더욱 불쾌한 것이었다. 알고 지낸 동안의 경험으로 감남이를 레즈비언이라 판단한 친구는, 그가 재정체화한 줄도 모르고 여성 간의 성애만을 칭송했고, 동시에 다른 성소수자들에 대한 비하도 멈추지 않았다. 감남이는 그 일 이후 화가 쌓여 한 동안 잠도 못 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감남이는 친구의 혐오발언에 반박하거나 화내지 못했다.

적당히 (지적)했으면 괜찮았을 수도 있는데, 아님 적어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라도 있었을 텐데. 전 겁쟁이처럼 눈 돌리고 못들은 척 했어요. 제 퀴어 친구들을 모욕했는데. 그게 죄스러워요.”

감남이는 여전히 그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재정체화하고 힘든 일이 더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혐오적인 것에 불편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됐다고 답했다.

그냥 세미나 다니면서 너무 많은 혐오를 인지하게 됐고요, 트위터를 하면서, 독서나 논문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지식들을 얻으면서 너무 많이 괴로워졌어요. 그냥 평소에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들 모든 게 다 혐오고, 그걸 알게 돼서 힘들기도 해요. 남들이 하는 말도 힘들지만 저 스스로가 과거에 내뱉은 말이나 했던 일들이 매일매일 떠올라서, 그게 정말 괴롭고 후회돼요.”

미래에 대하여

사실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젠더 정체성을 찾는 것이 그리 절실하지 않다고, 현재 열정을 쏟고 있는 게임보다도 중요한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퀴어에 대해 공부하며 여자, 남자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런 게 실존하긴 하는 건지 의심이 들어 자신의 젠더를 어디에도 정착시키지 않은 채 놔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적당히 벌고 적당히 스트레스 안 받고 몸 건강하게 살다가 맛있는 거 먹고 게임하는 게 제 꿈입니다.”

감남이가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애인과 함께 일본 과자를 집어먹으며 게임에 집중하는 감남이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1. 이 용어는 젠더정체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어떻게 칭할지 탐색하는 과정 중이지만, 트랜스/젠더퀴어로 정체화할 이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잠정적인 젠더정체성 용어이다. -출처: 젠더여행자를 위한 번역 책자(여행자 발간) [본문으로]
  2. 성별에 관계 없이 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본문으로]
  3. 성적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는 A엄브렐라의 하위 정체성. [본문으로]
  4. 여성캐릭터 간의 사랑을 그린 장르를 통칭. [본문으로]
  5. 태어날 때 의사에게 지정 받는 성별. [본문으로]
  6. 재(再)정체화 [본문으로]
  7. 젠더위화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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