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주제는 무지에서 나오는 뻔뻔한 언어폭력이다. 여기서 뻔뻔함이란 무엇일까. ‘뻔뻔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부끄러워할 만한 일에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다.’라는 뜻이다. 성소수자로서 살면서 우리는 많은 혐오와 차별이 섞인 말을 듣고 살아간다.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고, 상처 받고, 되새기고 싶지 않아도 되새기게 되는 쪽은 성소수자들이다. 그들의 발언은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지만 그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뻔뻔히 말을 내저지른다. 이들은 왜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한가.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을 가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어디에나 있는 당연함을 이상함으로 취급하고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면 그 존재를 지우려 한다. 그와 함께 부정적 인식을 심기 때문에 그들은 무지하다. 그리고 무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알아야할 것을 모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뻔뻔한 언어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폭력에 그치지 않고 신체적 성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 또한 있다. 이제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젠더퀴어로 살아가며 겪은 언어폭력, 주로 무지로 인한 폭력이며, 오히려 그 뻔뻔함에 내가 할 말을 잃어버린 상황들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려한다.
나는 재정체화 시기에 힘든 짝사랑의 고비를 지나고 있었고 재정체화와 실연의 아픔 등이 겹쳐 우울증이 더 심해진 상태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고 부모님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학교 상담실을 찾았다. 내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지금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내 정체성을 털어놓았다.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하지만, 그런 놀란 반응이나 처음 본다는 반응, 신기해하는 반응이 썩 기분 좋진 않았다. 그리고 상담은 뒷전이 되었고, 나에 대한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글썽이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왠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니가 아직 어려서 혼란을 겪는 건 아닐까”부터 “너는 남자역할이니 여자역할이니”까지 전형적인 이성애 중심적 무지에 둘러싸인 포비아의 말들이었다.괜히 상담을 했다싶었다. 상담선생님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할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태도였지만 이미 무례했다. 학교 상담실에서 성소수자는 배제되어 있었다. 교실에서 동성애는 병이라는 말을 듣고 퀴어가 농담거리로 소비될 때 상담실만은 나를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어디에도 성소수자가 쉴 곳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꽤 많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레즈비언에서 데미가이로 재정체화 했다. 그 과정에서 FTM이라고 정체화 했던 시절도 있는데 그때의 커밍아웃이 꽤 상처로 남아있다. 그 친구는 바이섹슈얼이고 퀴어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아니었지만 관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친구이지만, 무엇 때문인지 트랜스 젠더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트랜스 젠더라 함은 MTF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점도 상당히 불쾌했다. 그 친구는 “트랜스젠더가 성별이분법을 강화한다.”고 주장했고, “스스로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되지 굳이 옷을 그렇게 입고, 화장실을 들어가야하냐.”고 말했다.또한 사람의 외부 성기가 성별을 정하는 게 정확하지 않으면 무엇이 정확하냐고 했다. 그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나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커밍아웃 이후에도 그 친구는 여전히 나를 여성 취급하고 있다.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말했을 때는 쉽게 받아들이던 친구가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재정체화하자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고쳐놓으려는 듯한 태도가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재정체화한 젠더를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내 커밍아웃은 모두 지워졌다. 나를 레즈비언이라고 알고있는 친구들은 많지만 데미가이로서의 커밍아웃에 성공한 친구는 극소수이다.
나는 지정성별 여성이고 사회로부터 여성으로 지정되었으니 여성이어야한다는 규범이 당연한 줄 알고 살다가 이제 와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데미가이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여성’헤어스타일 중 ‘숏컷’이라는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당시에 자르게 된 계기는 단순히, 그때 당시에 짧은 머리를 하면 여학생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르고 보니 그 스타일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내가 ‘남자 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나를 호기심 삼아 찔러보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기를까하다가도, 스타일이 맘에 들어서 기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일본으로 1년간 유학을 갔다. 일본에서 살던 당시 미용비도 비쌌고, 우울증이 심해져 체중도 불어나고, 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바닥이 되었던 터라 머리는 어느새 자연히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왔고 길어진 머리를 자르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살이 쪄서 머리를 짧게 하면 더 쪄보인다며 머리를 못 자르게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엄마로부터 다이어트에 대한 엄청난 압박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스스로도 그게 옳다고 받아들여버렸고,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악착같이 다이어트를 했다. 결국 누구도 나에게 살쪘다는 말을 하지 않던 시절의 몸무게와 같은 몸무게가 되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려고 하자 엄마는 나에게 버럭 화를 냈다. 밖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남자라고 하는 게 싫다고, 사람들이 널 남자라고 하면 기분이 좋냐고. 나는 솔직히 별 생각 없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내가 머리가 긴 채로 데미가이 일 때는 아무도 나를 남자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머리가 짧을 때는 아주 조금이라도 남자로서 인식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젠더표현을 억압하는 엄마는 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 폭력이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일상의 폭력들이 존재한다. 퀴어들은 폭력을 겪어왔고 그들이 무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겪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 없이 저질러왔던 ‘편한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꾸만 퀴어들의 정체성을 지우고 부정한다. 사실 대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발언과 행동들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무지에서 나오는 뻔뻔한 폭력이다. 하지만 퀴어들은 뻔뻔하지 않다.우리들은 당당하다. 당당함으로 혐오 세력에 맞설 것이다.
그리고 혐오자들에게 고한다. 내가 왜 당신의 무지를 이해해줘야 하는가. 알면서 하는 혐오는 말할 것도 없으며,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 또한 당당할 수 없다. 뻔뻔스럽게 혐오를 내저지르지 마라. 당신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당신이 잘못되었다. 당신이 겪어본 적 없다고 허상 취급하는 것은 당사자들에 대한 폭력이자 혐오이다. 당신이 이미 저지른 폭력은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쉽게 용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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