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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팀/리비

[패싱] 혁명을 꿈꾸며

[Editor's quotes패싱(passing), 나의 외적인 모습이 사회적으로 소속되기를 원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혹은 보여지기를 원하는 성별의 일원으로 남들에게 인식되었을 때, ◇◇으로 보여지기를 통과(pass-)했다, 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첫 눈에 남성으로 인식된 트랜스남성은 패싱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회적인 관계 맺음 안에서, 트랜스젠더에게 패싱은 때로는 생존에 직결된 문제이고,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며, 때로는 나의 정체성을 증명받거나 증명하기 위한 수단도 됩니다. 트랜스젠더, 그리고 패싱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함께 경청해보면 좋겠습니다. _리나



혁명을 꿈꾸며


리비 (블로그팀)










패싱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나에게 있을까. 


는 트랜지션을 진행하지 않고 트랜지션을 진행할 계획이 없는 논바이너리[각주:1] 트랜스젠더다. 개인적인 상황으로 트랜지션을 계획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완벽히-목소리, 유방, 짧지 않은 머리-여성패싱된다. 그래서 이 주제를 받았을 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패싱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것이 다른 트랜스젠더에게 일종의 기만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써보는 이유는 내 생애를 기록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싶은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자 함이다.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사연으로 인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트랜스젠더퀴어가 있음을 믿는다. 


나에게 있어서 패싱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소셜-젠더 디스포리아. 둘째는 혁명 대상.


첫번째 의미인 소셜-젠더 디스포리아[각주:2] 이야기 해보자. 나는 남성과 여성을 왔다갔다 하는 바이젠더로, 나 자신을 여성으로 인지할 때보다 남성으로 인지할때가 더 많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바디-젠더 디스포리아[각주:3]가 아주 적은 편이다. 다만, 소셜-젠더 디스포리아는 조금 심한 편이다. 내가 내 신체적 특징으로 여성으로 불릴 때, 나는 아주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나는 내 몸에 불만이 없는데, 내가 남자로 보이기 위해서는 트랜지션을 해야하나? 안그래도 불안정한 미래와 전공을 뒤로 한 채로? 게다가 내가 늘 남성인가? 여성일 때도 많은데? 내가 트랜지션을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여성일때는 어떤 디스포리아를 겪을 것인가? 불쾌감과 함께 이러한 복잡한 고민을 하고 마는 것이다. 논바이너리의 삶이란 하고 자조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지만, 너무 힘들고 지칠때는 이러한 자조를 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언니라고 불리는 것도 너무 힘들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같다는 생각을 마구 하게된다.


그러나 여기서 마냥 앉아있을 수는 없다. 여기서 두번째 의미인 혁명 대상이 나온다. 사실 패싱이라는 것은 우리를 둘로 나누는 끔찍한 악법인 지정성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해하지 말라. 지정성별이 곧 패싱성별이라는 것이 아니다. 지정성별과 패싱성별은 실제로 비슷하다. 내 의지가 아니라는 것[각주:4], 그리고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젠더퀴어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아니라면 어머! 저 사람 논바이너리일지도 몰라! 이렇게 말을 할까? 결국 패싱성별은 지정성별과 마찬가지로 이분법적이다. 패싱성별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성과 남성성에서 나온다. 여자는 긴 머리카락, 남자는 짧은 머리카락, 여자는 치마, 레이스. 남자는 바지, 단순한 디자인. 이러한 지긋지긋한 이분법이 나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 사실 모두들 알고 있지 않은가? 누가 어떤 옷을 입던,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던, 어떤 높낮이의 목소리를 내던 그 사람의 알맹이는 변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모르는게 아니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부정하는 사람들을,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과 그들이 모인 사회를 위해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패싱을 향해 우리는 혁명을 선언해야 한다. 너희가 굳게 믿는 그것은 거짓이다! 하며 선포하고 그들과 사회를 뜯어고쳐야 한다. 이것은 곧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트랜지션 계획이 없다. 그리고 내 몸에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내가 해결해야 할 것은 나를 함부로 여성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는 사회이지, 내 몸이 아니다. 나는 나를 무턱대고 여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짜증과 불쾌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나를 변화시킬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아닌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1. 이분법에 맞지 않는 [본문으로]
  2. 사회적으로 지칭되거나 불리는 성별로 인한 성별 불일치·불쾌감 [본문으로]
  3. 신체 구조로 인한 성별불일치·불쾌감 [본문으로]
  4. 하나는 의사가, 하나는 타인이 정한다. [본문으로]